수유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골목길. 다세대 주택이 촘촘하게 이어진 길에 노란 입간판이 보입니다. 뜻밖의 장소에 있는 서점, 우리는 그런 서점을 ‘동네 책방’이라 부르지요. 책방 이름은도 남 일 같지 않은 ‘시행과 착오’네요. 강북구와 도봉구로 떠난 책방 산책, 먼저 ‘시행과 착오’의 이현지 책방지기가 맞이해 줍니다.

Q. ‘시행과 착오’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으셨나요?

‘시행착오’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책방 이름을 지을 때 제일 먼저 떠올렸는데, 주변에서는 너무 길거나 어렵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이름들도 생각해 봤지만, 이름에 의미를 끼워 맞추는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처음 생각했던 ‘시행과 착오’를 책방 이름으로 지었고, 책방 표어도 “당신의 시행착오를 응원하는 책방, 시행과 착오입니다.”가 됐어요.

Q. 수유역 근처에서 책방을 여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했지만, 어렸을 때 여기서 자랐었어요. 그때 이곳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제가 사는 동네를 책방 하나 없는, 즐길 만한 문화가 없는 곳으로 여기는 게 속상했어요. 그래서 책방을 하게 되면 꼭 이 동네에서 열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큐레이션은 어떻게 하시나요?

우연히 독립 출판물을 접하게 되면서 책방을 차리고 싶다는 로망이 생겼어요. 대형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독립 출판물에 다른 세상을 만난 기분이었어요. 큐레이션을 할 때는 개개인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 작품을 선택해요. 입고할 때는 작가님들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독립 출판물을 모아 둔 사이트를 이용하고 있어요.

제 취향인 한국 현대 문학도 가져다 놓았는데요, 처음엔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 중 시행과 착오에 어울리는 책을 가져다 놓았어요. 그런데 그렇게만 하니 책장이 많이 비더라고요. 그래서 손님으로 오시는 분들에게 추천받은 도서도 비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파도시집선〉이 그래요. 손님의 추천으로 전권을 입고해 놓았지요.

Q. 이현지 책방지기님은 어떤 독서 습관을 가지고 계신가요?

책방을 하기 전에는 한 권을 다 읽은 후에야 다음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책방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읽어야 할 책들이 되게 많은 거예요. 독서 모임에서 진행하는 책도 읽어야 하고, 큐레이션 할 새 책도 봐야 하고, 아직 들이지 않은 책도 봐야 하고, 그러면서 제가 좋아하는 책도 봐야 하니까 동시에 네 권을 읽은 날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한 번에 여러 권을 읽는 독서 방식이 생각보다 제게 잘 맞는 거예요. 최근 ‘병렬형 독서’라는 키워드가 뜨고 있는데, 제 독서 습관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Q. ‘야작: 야밤의 창작자들’이라는 독서 모임은 어떻게 진행하시나요?

한 달 동안 매주 같은 요일 저녁에 만나는 독서 모임이에요. 5월에 이어 6월이 두 번째 달이에요. 5월, 6월 모임이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는데요, 5월 모임에는 매주 한 권씩을 읽었고, 6월에는 『2024 제15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을 4주에 걸쳐 읽었어요.

독서 모임을 시작할 때 제가 만든 독서 기록장을 먼저 나눠드려요. 각 모임마다 독서기록장의 질문이 정해져 있어서 1시간은 독서 및 독서 기록장 작성으로 진행하고 나머지 1시간은 책의 내용, 읽고 난 후 떠오른 생각, 느낌을 이야기하며 보내고 있어요. 모임이 끝나도 나만의 독서 기록장을 간직할 수 있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Q. 독서 모임을 통해 새롭게 느낀 점이 있으신가요?

사람이든 환경이든 ‘사계절을 겪어봐야 아는 거야’라는 말이 있잖아요. 제가 그 말도 좋아해요. 책방을 시작한 봄부터 시작해서 사계절을 나중에 되돌아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제철 책 독서 모임’도 운영하고 있어요. 이 독서 모임은 봄에는 봄과 맞는, 지금은 여름이니까 여름에 맞는 책을 각자 준비해 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 책을 왜 선정했는지, 나에게 이 계절이 어떤 의미인지 서로 다른 이유와 사연을 알아가는 게 굉장히 재미있어요.

봄 시즌에는 봄이라서 세상이 밝으니 오히려 어두운 걸 봐도 좋을 것 같다며 어두운 소설을 가져온 분도 있었어요. 같은 계절인데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게 너무 신기해서 앞으로 다가올 가을과 겨울도 기다려져요.

Q. 책방을 열기 전 경험이 책방 운영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나요?

책방을 운영하기 전에 영상 업계에서 일을 했어요. 동떨어진 일 같지만, 이때의 경험이 책방 운영에 필요한 이미지, 굿즈를 디자인하거나 릴스를 제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책방과 카페를 겸하기에 책방 로고가 붙은 컵을 만들었는데, 굿즈로 팔면 어떻겠느냐는 주변의 제안에 판매용으로 제작하기도 했어요. 소소하지만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을 누군가의 시행착오를 응원하자는 책방의 취지에 맞게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 기부했고요.

Q. 책방 운영에서도 시행착오의 경험이 있으신가요?

매일 ‘시행착오’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작할 때 많이 겪었어요. 부동산에 계약하러 간 날 파기된 일도 있었고, 공사를 마치고 불을 켰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린 일도 있었어요. 그러면서 오픈이 더 미뤄지게 되었고요. 이 책상도 규격이 맞지 않아서 친오빠와 함께 자르고 사포로 문지르고 페인트칠을 했던, 귀여운 시행착오도 겪었어요. 지금은 현실적으로 월세를 내는 데 시행착오를 겪고 있고요.

Q. 시행과 착오에서는 어떤 책을 추천해 주시겠어요?

용진 작가님의 『서울 중독』이라는 책이에요. 책방 인스타그램에 처음으로 올린 독립 출판물 소개 콘텐츠였어요. 책방을 하면서 멀어지긴 했지만, 저도 탈서울을 꿈꾸는 사람이라 책 제목이 먼저 눈에 띄었어요. 골목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과 함께 책 소개를 포스팅하며 작가님의 인스타그램 계정도 함께 태그 했는데, 며칠 후, 용진 작가님이 방문하신 거예요. 여기서 30초 거리에 사신대요.

첫 포스팅을 보고 이 책을 직접 사러 오는 독자분들도 계시고, 책방지기로서 처음 저자를 만난 일이기도 해서 제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책이 되었습니다. 요즘에도 입고 요청을 드리면 작가님이 직접 책을 들고 오세요. 이번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일희희 일비비』라는 신간도 선보이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