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세><환경스페셜>의 김가람 PD를 만나다 🙋 a brick에서는 매거진 브릭스의 기사 한 편을 뉴스레터로 전달해 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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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시청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봤을 여행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 속으로>. 이른바 '걸세'를 만든 PD는 어떤 사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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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교양·다큐멘터리국 소속 김가람PD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 <6시 내고향>, <생로병사의 비밀> 등 걸출한 프로그램을 연출했고, 현재는 <환경스페셜> 팀에 속해 있습니다. 김가람PD가 연출한 <환경스페셜 -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는 '2022년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지요. 최근 방송 뒷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걸어갑니다 세계 속으로』를 펴낸 김가람PD를 만나 교양 다큐 PD의 삶으로 들어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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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걸어서 세계 속으로> 촬영을 위해 몇 개국을 다니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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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정도 프로그램을 맡으며 여섯 차례, 9개국을 다녀왔어요. 한 번 가면 2주 정도 다녀오고요. <걸어서 세계 속으로(이하 ‘걸세’)>는 PD 한 명이 기획부터 섭외, 촬영, 편집까지 다 하는 시스템이에요. 그래서 <걸세> 사무실은 출장을 떠나거나 편집실에서 작업하는 PD들로 거의 비어있다시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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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내레이션은 촬영하며 적어 둔 메모로 만들어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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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거기가 익숙한 환경이 전혀 아니잖아요. 사람들도 그렇고 말도 잘 안 통하고. 날씨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촬영 때는 진짜 찍는 데만 집중해요. 인터뷰도 해야 되고 체험도 해야 되고, 말 그대로 분량을 긁어모으거든요. 일단 되는 만큼 많이 찍고 돌아가 나중에 생각하자 이런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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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연출하신 에피소드 중 가장 <걸세>답다고 생각하신 촬영지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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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분들이 ‘걸세답다’고 생각하시는 게 모르는 사람과의 자연스러운 만남, 새로운 지역으로의 탐험, 화면으로 보는 절경 같은 걸 거예요. <걸세>만의 클리셰 아세요? “노랫소리가 나서 따라가 봤더니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이런 진행이요. 화면으로는 혼자서 편안하게 여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아요. 촬영을 가기 전에 120% 섭외를 하고 가도 현장에서 반타작이라도 하면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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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첫 촬영지였던 아르헨티나도 그랬어요. 처음이라 우왕좌왕하기도 해서 정말 사전 섭외도 안 됐어요. 그런데 막상 도착해 걸어다니며 다양한 사람도 만나고 진짜 현지인의 집에 초대 받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배낭 여행자 같은 모습이 담겼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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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페리토모레노 빙하에서 / 김가람PD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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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걸세>를 연출하시며 지키셨던, PD님만의 원칙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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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겠다는 것보다는 ‘이것만은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던 것은 있어요. 쉽게, 편안하게 가려하지 말고, 이미 방송에서 많이 다루어진 것들을 반복하지 말자고요. 그래서 지역이 정해지면 <걸세>는 물론 <세계테마기행>에서 다루었던 그 지역의 아이템은 되도록 제외하는 방향으로 갔어요. 시청자들이 방송에서든 책에서든 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새로운 것 70%, 익숙한 것 30%의 비율을 맞춘다는 느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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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페리토모레노 빙하에서 / 김가람PD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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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걸세> 촬영으로 출장을 갔던 곳을 여행으로 다시 찾으시기도 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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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출장을 갔다 오면 굳이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요. 오전에 하나, 오후에 하나 매일 2개 이상의 아이템을 2주 동안 쉬지 않고 찍어야 하니 끝나고 나면 진이 다 빠지거든요. 그런데 브라질은 제가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공항에서 처음으로 “아, 잘 놀았다”라는 생각을 했던 나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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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정말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촬영 스케줄도 계속 틀어지고 심지어 드론이 산골짜기에 추락하는 사고도 일어났어요. 하지만 그게 힘들지 않았던 이유는 결국 브라질에서 만난 사람들이었어요. 이게 일이 아니라 ‘여행’이라 느끼게 해 준 사람들, 저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아낌없이 쓰면서 도와줬던 사람들이 있었지요. 브라질과 한국은 시차가 12시간, 낮밤이 딱 반대예요. 그것처럼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도 조금 이상하게, 다르게 흐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출장을 다녀온 후 남편과 함께 브라질을 여행으로 다시 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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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렌소이스 마라녠시스 사막에서 / 김가람PD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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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PD가 되기 전에, 싱가포르에서 첫 사회생활을 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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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싱가포르에서 인턴을 했어요. 완전히 다른 문화권으로 들어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줄도 몰랐고요. 싱가포르에서 인턴십을 하기 전까지 저는 한국 사회가 정해둔 시간표 그대로 살고 있었어요. 초중고를 개근으로 졸업해서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에서는 학점 쌓고 인턴도 하고 취업준비를 ‘준비’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싱가포르에서 만난 사람들, 저처럼 다양한 나라에서 인턴십을 통해 온 사람들은 한국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인생 시간표를 짜서 살고 있었어요. 삶의 궤도가 달랐던 거지요. 아마 싱가포르에 가지 않았더라도 방송국에 들어와 이 일을 하고 있었을 것예요. 하지만 지금보다 삶의 반경이 훨씬 좁은 사람이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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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등학교 때 김혜수 씨가 진행하던 시사프로그램 <W>를 즐겨 봤어요. 세상 살며 한 번도 못 가볼 것 같은 곳들, 전쟁 중이거나 내전이 터졌거나 이런저런 사회적 문제가 있는 곳들이 많이 나왔어요. 그런 곳에 직접 가는 저널리스트들을 보며 되게 신기했고, 저런 직업을 가지면 저런 데 가 볼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이사도 안 가고 같은 동네에서 계속 살며 학창시절을 보내던 저에게 다른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작년에 <환경스페셜> 촬영을 위해 콩고민주공화국으로 출장을 다녀왔는데, 고등학생이었던 제가 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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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행객이 아닌 PD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특별한 관점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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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걸세>뿐만 아니라 <6시 내 고향>, <생로병사의 비밀> 같은 프로그램도 하며 다양한 곳을 다녔는데 그때마다 정말 다양한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냥 평범한 사람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툭툭 던지는 말들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할머니께 “이 일을 얼마나 하셨어요?” 여쭤보면 아무렇지 않게 “60년!” 하시는 거예요. 그런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정말 파란만장한 현대사가 다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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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스페셜 – 옷을 위한 나라를 없다>를 제작할 때도 의류 폐기물 문제를 선명하게 드러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좋았지만, 옷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의류 폐기물은 또 어디로 가서 어떻게 되는지 그 모든 과정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도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PD라는 직업 덕분에 할 수 있는 경험이지요. 앞으로도 시청자분들이 “어, 저건 몰랐네” 하는 프로그램, 인사이트든 정보든 그런 것을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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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걸세>는 PD가 여러 카메라로 촬영도 직접하는데요, 촬영은 따로 배우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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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다 보니까 누가 저를 붙잡고 가르쳐주진 않았고, 촬영 기자 동기 등 주변 사람들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면서 배웠어요. 드론 촬영 같은 경우는 다른 PD들과 함께 드론 회사에서 운영하는 교육 센터에서 따로 배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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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세>가 다 비슷비슷한 것 같아도 가만히 보면 PD마다 영상 느낌이 많이 달라요. 어떤 분들은 DSLR까지 챙겨가 절경을 찍으며 화면에 힘을 주기도 하시고, 어떤 분들은 고프로만 들고 촬영하시기도 해요. 저는 보통 캠코더 2대와 드론을 가지고 다니며 풍경도 찍고 스토리도 보여주고, 특히 사람들과의 만남을 많이 담으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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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에서 패러글라이딩 전 촬영 장비 점검 / 김가람PD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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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걸세>에서 인터뷰는 어떻게 진행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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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멋진 풍경 앞에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좋았어요”, “재밌었어요” 하고 엄치 척 올리고 마는 인터뷰는 되도록 지양하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저는 주로 해외 관광지에 놀러온 현지인들과 인터뷰를 했어요. 그러면 저를 비롯한 외국인 여행자들보다 깊은 이야기가 나올 확률이 높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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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테이블마운틴이 유명하잖아요. 거기 올라가 관광 온 현지인을 찾는 거예요. 당시 흑인 가족들을 인터뷰했는데, 백인과 흑인을 분리했던 아파르트헤이트가 있던 나라였기 때문에 그분들이 느끼는 감회가 남달랐어요. 예전에는 다 백인들만 이용하는 곳이었기에 이런 곳에 올 생각도 못했다, 지금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여기에 올라와 이런 풍경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니 너무 좋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요. 이런 인터뷰를 따면 프로그램도 더 살아 있는 느낌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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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세>를 촬영하며 만난 사람들 / 김가람 PD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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